까비노 책방

여행의 이유

까비노 2019. 11.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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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햇빛이 눈을 비추고, 선선한 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눈을 떠보니 전날 도착한 새로운 장소지만, 집보다 더 곤히 잠든 듯하다. 아침을 먹을까? 점심은 뭐 먹지?... 아! 이곳에 갔다가 들르자.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일정을 계획하고,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아마 '여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않는다. 아, 거의 다니지 않는다. 걷는 걸 좋아해서 목적지를 두 다리로 가지만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것도, 다니는 길도, 만나는 사람도 그렇다. 단지 바뀌는, 전혀 다른 것을 접하는 경우는 '책'의 장르뿐 인 듯싶다. 글자는 무한한 상상을 주지만,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확실히 있다. 그래서 이 책 《여행의 이유》가 더 눈에 들어온 듯하다.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저자는 김영하 작가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좋은데, 아마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이하 알쓸신잡》 출연이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이후 발간된 소설 《오직 두 사람》의 판매량이 그걸 말해준다. 그의 또 다른 저서로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오빠가 돌아왔다 등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여행이 '내가 생각하던 여행'과는 다르다는 걸로 책은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포스팅 시작 부분과 같이 따스하고 편안한, 그리고 성공적인 유람기다. 반면에 저자는 여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겪는 질병 중에 하나가 '불면증'이다. 잠들기 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며 현재 행해야 하는 '잠'이라는 행동을 못하게 되는 증상이다.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한동안 잠에 들기 힘들었다. 빠르면 새벽 다섯 시, 늦으면 다시 다음 날 잠이 들곤 했다. 몸에도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갖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행이 우리를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는 문구가 마음에 깊게 다가왔다. 오랜 불면증이 단 1박의 가족 여행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드디어 '현재'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뭘까?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다양한 대답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한 가지는 이렇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여행은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생각해 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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