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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까비노 2025. 9. 2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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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으며 갸웃했다. 그래도 페이지는 넘어갔다. 이해보다 흡입력 앞섰다.

 

소설은 한 줄로 쭉 가지 않는다. 가출한 15 소년 ‘다무라 카프카 이야기와, 사고 이후 인지 능력이 낮아진 고양이와 대화하는 ‘나카타 사토루 이야기가 교차 진행된다. 두 서사는 현실 장면 사이사이에 ·환상·기억의 파편이 끼어들고, 시간 순서도 완벽히 직선적이지 않다. 그래서 “무엇이 실제냐”를 따지다 보니 이야기에 자꾸 물음표가 남았다.

 

무의식은 삶을 지배한다. 카프카의 해변이었다.

 

다무라와 나카타는 어느 시점에서 살인 사건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다. 나카타가 죽게 하는 인물 조니 워커는 다무라의 부친(조각가)이고, 같은 날 다무라의 옷에도 피가 묻는다. 둘이 같은 사건의 서로 다른 층을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 겹침이, 끝으로 갈수록 두 이야기를 하나의 곡선으로 묶는다. 초현실적인 살인이었다. 의식 너머의 무의식은 강력했다.

 

이 작품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완전히 분리시킨 게 아닐까? 인물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과 충동을 통과한다. 중요한 건 ‘그럼 아무 책임도 없는가?’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도 어떤 행동을 고를지를 반복해서 시험받는다. 많이 회자되는 예언(부친 살해·금기 관계)은 정답을 주려는 장치가 아니라, 피하려 할수록 더 뚜렷해지는 내부의 힘을 보여주는 장치였을까? 작품은 그 힘을 무화시키지 않고 어떤 선택으로 응답할 것인가를 끝까지 묻는 듯했다.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 준다.

 

무의식의 바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위에서 방향을 정하는 작은 결심은 우리 몫이다. 그래서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말하며 시간을 버는 듯 보였다. 그리고 아주 작은 선택을 더한다. 앞으로 가겠다, 오늘은 문을 닫겠다, 다시 읽겠다. 책을 덮고도 귓가에 파도 소리가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보다 끌림이 먼저였던 독서는, 이 문장 하나로 책임의 자리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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