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Making

소유가 넓어질수록 짜증은 깊어지고, 깊은 소유는 충만함을 준다

까비노 2026. 1. 1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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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가 넓어질수록 짜증은 깊어지고, 깊은 소유는 충만함을 준다”

오늘 느낀 감정이다. 나는 주식투자라는 좁고 깊은 세계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세울 때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어디 사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대기업이 아닌지’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나의 우물을 초라한 곳으로 규정한다.
그 넓은 세상의 기준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척해야 했다.

 

이따금씩, 내 안의 비평가도 끊임없이 나를 조롱한다.

나만의 우물이라는 말은 결국, 서울 아파트를 가질 수 없고, 전문직의 문턱을 넘지 못한 자의 비루한 변명 아니냐는 지적이다.
어쩌면 나의 철학은 현실의 높은 벽에 마주한 뒤 급하게 지어 올린 ‘신 포도’의 논리일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투지가 부족해, 소소한 만족이라는 이름의 방패 뒤로 숨어버린 패배주의자의 자위일 가능성도 다분하다.
내가 말하는 ‘깊은 소유’가 실상은 ‘넓게 가질 능력이 없음’을 은폐하기 위한 화려한 수사는 아니었는지 뼈아프게 자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나의 우물을 바라본다.

우물 밖의 개구리들은 서로의 등 위를 밟고 올라서며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려 사투를 벌인다.

그들이 쟁취한 전리품은 화려하지만, 그 과정에서 깎여나간 영혼의 파편들은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내가 주식투자라는 깊은 길에서 느꼈던 행복은 단순히 ‘수익’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의 간섭 없이 나만의 논리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결과에 온전히 책임지는 대서 기인한 것이었다.
만약 내가 타인의 시선에 떠밀려 원치 않는 부동산 매수나 입사 경쟁에 뛰어든다면, 설령 그곳에서 승리한다 한들 그것을 '나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비겁한 도피로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치열하지만 만족스러운 방식임을 말이다.
나의 고유함은 남보다 앞서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길을 걷는 용기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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