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비노 책방

글쓰기의 최전선

까비노 2020. 2.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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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나'와 대면하여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 책 「글쓰기의 최전선」의 저자는 은유이다. 그는 증권사 일했으며, 출산과 육아로 퇴직한 뒤 30대 중반 기업 사보지를 만드는 일을 거쳐, 2012년 「올드걸의 시집」을 출간한다. 현재는 작가이자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로는 「쓰기의 말들」, 「다가오는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이 있다.

 

1

 이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왜'라고 묻는 '느낌'으로 써내려가는 그 섬세한 몸부림의 시간을 담았다. 몸소 말하고 헤매고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글쓰기는 유년, 청년, 가난 등의 키워드를 통해 '삶에 기반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글을 쓰려면, 무엇부터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일단 써야 한다. 아니면 영원히 쓸 수 없다.

 

 일기와 글쓰기를 구분해야 한다. 일기는 혼자 쓰고 혼자 덮는 것이다. 글쓰기는 외부의 검증과 소통 속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내가 되어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 과정에서 삶에 관대하고, 상황에 솔직하고, 묘사에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자기 언어로 자기 삶을 재구성해보는 과정은 서사를 풀어내는 쾌감을 일으킨다.

 

2

 내가 쓴 글의 첫 독자는 나다. 좋은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고 좋은 문체에 대한 감을 잡는 것,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긴다. 홀로 독서는 '입체적 감응하기'가 어렵다. 뭐라도 겪고 변화하는 체험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한 후 '글 써서 토론하기'는 필요한 것을 감각적으로 끌어당긴다. 내 변화를 알려주는 척도는 '시'다. 시는 의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매번 시 읽기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이지 싶다.

 

3

 한 인간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제도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로 완성된다. 슬프다.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왜' 라고 묻는 글을 선사하는 게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이다. 하나의 문제 의식을 담아 읽는 이에게 또 다른 생각을 불러와, 울림을 주는 게 좋은 글이다. 그러니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간을 갖자. 이미 정해진 상식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재구성하는 기록이니까. '남의 글에서 억눌러놓은 '나'를 보았을 때, 미처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그 글을 좋은 글이라고 느낀다. 고마워한다.' 

 

4

 글을 보면 삶이 보인다. 좋은 글은 인격의 결을 보여준다. 삶의 거울이고,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글은 한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구체적인 줄거리로 써야 한다. 누군가에게 가닿지 바라면서 쓴다. 생각과 생각을, 경험과 경험을 잇는다. 힘을 빼고 꾸밈없이 써내려 간다. 사유가 촘촘해서 문장이 흐름을 타고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건드리며 인식의 틀을 흔들어놓는 글, 하나의 메시지나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라도 남으면 그건 좋은 글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이유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할 언어를 갖고 싶은 욕망이, 나에게도 존재했던 것이다. 나는 내 주변과는 다른 욕망에 답답함을 느꼈다. 해소하기에는 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일거다. 글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 타인과 공감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앞으로 나에게 스스로 좀 더 솔직해 질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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