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한 번쯤은 다시 꺼내보곤 하는 책이다. 올해는 새벽녘 문득 눈이 떠져 다시 손에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읽다가 예전에는 떠오르지 않았던 질문 하나가 따라붙었다. "왜 나는 이것을 좋은 것이라고 느끼고, 저것을 촌스럽다고 느끼는가?"
이전까지는 이 책을 '상류층'이라는 워딩에 함몰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심리자본, 문화자본, 지식자본, 경제자본, 신체자본, 언어자본, 사회자본이라는 7가지 틀로 상류층의 코드를 나열하고, 그걸 습득하면 계층이 이동한다고 말하는 자기 계발서 정도로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책이 진짜 말하려는 건 상류층이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고, 그 취향 자체가 사회적 조건과 계급적 위치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즉 '무엇을 따라 해야 하는가'보다 '나는 왜 지금의 것을 자연스럽다고 느끼는가'를 먼저 물어야 하는 책이었다.
이 논지를 붙잡고 다시 읽어봤다.
품격을 나눈다는 7가지 자본
이 책의 뼈대는 단순하다. 저자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아비투스를 계층적 단계로 구분하고, 그 차이를 심리·문화·지식·경제·신체·언어·사회라는 7가지 자본을 통해 설명한다.
심리자본: 낙관주의, 회복탄력성, 야심 같은 정신적 태도
문화자본: 취향, 교양, 문화적 코드
지식자본: 학위, 전문성, 정보에 대한 접근력
경제자본: 소득과 자산
신체자본: 건강, 체형, 매력
언어자본: 말하는 방식과 어휘
사회자본: 인맥과 관계망
태어난 계층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각 자본을 의식적으로 습득하고 관리하면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 프라다 대신 유기농을, 클래식 브랜드 대신 소탈해 보이는 취향을 선택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침도 곳곳에 등장한다.
취향은 어디서 왔을까
이번에 읽으며 새삼 다시 붙잡고 읽은 문장은 "아비투스는 일부에게는 평평한 길을 만들어주고, 누군가에게는 날아오르는 것 자체를 방해한다"였다. 예전에는 이 문장을 계층 격차의 불공정함을 요약한 문장 정도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읽혔다. 이건 '무엇을 가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무엇을 자연스럽게 느끼는가' 자체가 이미 불균등하게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좋은 것과 촌스러운 것을 가르는 감각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
문화자본을 다루는 장에서 "프랑스어, 피아노, 축구 vs 그리스어, 바이올린, 골프"처럼 계층별로 선호되는 취향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이번에는 다른 질문으로 읽혔다. 예전에는 이 대목을 '어느 쪽을 골라야 상류층처럼 보이는가'의 목록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나는 왜 이 중 어느 한쪽을 이미 더 좋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읽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좋다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선택 이전에 이미 내가 자란 환경이 심어놓은 감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구별 짓기를 비판하면서, 구별 짓기를 가르치는 책
처음에 세운 질문, "왜 나는 이것을 좋은 것이라고 느끼고, 저것을 촌스럽다고 느끼는가"를 붙잡고 다시 읽어보니, 책이 실제로 하고 있는 작업과 책이 말하는 방식 사이에 어긋남이 보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상류층이 어떻게 사는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취향을, 어떤 행동을, 어떤 판단을 왜 '자연스럽다'라고 느끼는지, 그리고 그 느낌 자체가 사실은 자라온 환경과 계층적 조건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결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개념을 정반대 방향으로 사용한다. "아비투스 = 상류층의 생활양식"으로 정의한 뒤, "그러니 그 생활양식을 배우고 습득하면 당신도 상류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의 문법으로 바꿔버린다. 문제는 이 전환이 처음의 질문을 다시 지워버린다는 점이다. "왜 나는 이걸 세련됐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세련된 걸 어떻게 흉내 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슬며시 바뀌어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묘한 역설이 느껴졌다. 책은 계속해서 계층 간 취향의 차이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몸에 새겨지는지를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독자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 몸에 새겨진 것을 겉에서부터 흉내 내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야 형성되는 것을 체크리스트처럼 습득하라고 권하는 순간, 이 책은 스스로 설명한 개념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렇게 '계층을 흉내 내는 법'으로 아비투스를 소비하는 순간, 독자는 이미 타인의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재고, 비교하고, 서열화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이 책이 비판하는 듯 보였던 그 구별짓기의 구조를, 이 책을 읽고 따라 하려는 순간 독자 스스로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계층 간 격차는 불공정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책이, 결과적으로는 "그러니 더 위 계층의 코드를 학습해서구별 짓기게임에 더 잘 참여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매번 다시 읽을 때마다 이 책이 조금씩 다르게 읽히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이 어긋남 자체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좁혀지지 않는 틈 하나
책 자체는 매우 잘 읽힌다. 각 자본별로 구체적인 사례와 인터뷰가 배치되어 있어 흡입력이 있고, 실생활에 바로적용해 볼만한 조언들도 많다. 다만 계층을 가르는 취향의 기준들이 상당 부분 유럽, 특히 독일 사회를 배경으로 한 것이어서 국내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거나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예시도 적지 않았다. 또한 "누구나 노력하면 계층을 바꿀 수 있다"는 낙관적 메시지와, 책 초반에 강조했던 "계층은 태어날 때부터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냉정한 진단 사이의 긴장이 끝까지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계층 상승을 위한 구체적인 조언을 원하는 독자, 혹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을 새로운 틀로 점검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안내서가 될 것이다. 다만 '아비투스'라는 개념 자체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었다면, 이 책이 소개하는 아비투스는 원래 개념의 일부만을, 그것도 상당히 각색된 형태로 가져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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