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매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왜 '베스트셀러'일까? 「폴리매스」 마지막 장 476페이지를 끝으로 책을 덮을 때까지 내내 품어오던 의문이다. 회화, 조각, 건축, 무대 설계, 음악, 군사 공학과 토목 공학, 수학, 통계학, 역학, 광학, 해부학, 지리학, 식물학, 동물학을 다루며 뚜렷한 업적을 남긴 '다 빈치' 외 수백 명의 인물들을 따분하게 나열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의문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책을 읽은 다음 날 언어를 익히고, 업무를 다른 지식과 통합하려 했고, 소설 쓰기가 수월했고, 전자책을 읽으며 밥을 먹고, 스터디 카페에 들러 빅데이터 분야를 공부하고, 잠들기 전까지 이런 것들을 즐기고 있었다. 정확히 저자가 서문에 밝힌 '사람들이 필요한 행동에 나서도록 생각을 자극하는 도구가 되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존재 이유다.'가 내가 가진 의문에 답이었다.
폴리매스, 이 책은 다재다능한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깊게 다룬 책이 아니다. 에콰도르의 에우제니오 에스페호에 관해 아는 서구인이 얼마나 될까? 이 사람은 변호사, 의사, 언론인, 신학자, 경제학자, 정치 평론가, 교육 개혁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인도의 의사 호세 거슨 다 쿤하는 어떤가? 그는 역사, 화폐학, 고고학, 언어학, 의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20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을 썼다. 이 같은 방식으로 한 가지 소제목 아래 인물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뇌 속성 중 하나는, 자극에 따라 신경망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할 수도, 취향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하루 동안 많은 경험을 담는다. 그러나 이 경험들을 인식하고, 탐색하고, 통합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폴리매스는 우리 뇌를 똑같은 말로 반복해서 자극한다. 물방울이 반복해서 끊임없이 돌덩이에 떨어져 홀을 만들듯이, 관점을 변화시킨다. 경영학, 컴퓨터공학, 생명과학, 의학, 전기공학, 안전공학, 철학, 화학 등이 개별적인 학문이 아니라 하나로 보이게 자극한다.
호기심 많은 폴리매스는 인간이 한 가지 경로가 아니라 여러 가지 경로로 '지식'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무지를 똑바로 인식하고 이를 겸손하게 인정한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이분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생각에 한계를 두지 않고, 창의력을 확장하고, 개성을 중시하고, 호기심이 충만하고, 통합적 관점에서 사고한다. 제한된 전문 분야 외의 것에 관심을 보이면 괴짜라는 딱지가 붙겠지만, 그냥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 그것이 폴리매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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