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항상 고점·본전에 묶여 투자 기회를 놓칠까? (Anchoring Effect)

 

Anchoring Effect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초기에 제시된 특정값(Anchor)을 기준으로 삼아 조정을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린다. 문제는 이 초기 기준점이 합리적 가치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정보를 분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기준점에 묶여 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친 것 같다.”

 

한국 부동산의 전 고점 집착

주식시장의 본전·매수가·고점 프레임

그리고 장기 투자에서조차 행동이 늦어지는 이유

 

요즘 인간공학 공부를 하다 보니 '휴먼 에러(Human Error)'라는 개념이 계속 나옵니다. 아무리 기계가 완벽해도, 결국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인지 능력 한계 때문에 사고가 난다는 이론이죠.

그런데 오늘 공부한 이 이론을 보다가 문득 "어? 이거 내 부동산 이야기 아니야?"

산업 현장의 사고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장을 텅장으로 만드는 투자 실패의 원인도 바로 이 '뇌의 오류'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3가지를 공유해 봅니다. 

 

1. 뇌는 처음에 본 숫자에 영혼이 묶인다 (Tversky & Kahneman)

 

트버스키와 카너먼이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이들이 1974년에 발표한 논문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에서 언급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는 익숙하실 겁니다.

 

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밧줄 길이만큼밖에 못 움직이듯, 사람의 뇌도 처음 입력된 정보(숫자)에 닻을 내리고 거기 묶여버린다는 겁니다. “조정이 불충분하여 판단이 체계적으로 왜곡된다.”

 

이 말이 투자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요?

주식: 내가 산 가격이 8만 원(앵커)이라면, 기업 가치가 떨어져 6만 원이 돼도 절대 못 팝니다. 뇌의 기준은 여전히 8만 원이거든요. (본전 심리)

부동산: "2015년에는 저 아파트 5억이었는데..." 과거 가격(앵커)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8억이 적정가라도 비싸 보여서 못 삽니다.

결국 과거의 숫자에 묶여서, 현재의 가치를 보지 못해 기회를 날리는 것이죠.

 

2. 전문가도 속는 '호가'의 마법 (Northcraft & Neale)

 

"나는 공부 많이 했으니까 안 속아!"라고 생각하시나요? 1987년 노스크래프트와 닐의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전문가들조차 처음에 제시된 '호가(Listing Price)'에 속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처음 접한 가격이 강력한 기준점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이건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거 최고 가격에 집착하는 순간, 합리적인 판단은 마비됩니다.

"전고점 대비 아직 덜 떨어졌네?" (더 기다리다 매수 타이밍 놓침)

"전고점까지 가려면 멀었네?" (지루해서 바닥에서 매도함)

전문가도 뇌의 착각을 일으키는데, 우리 같은 개인 투자자는 오죽할까요?

 

3. '비싸 보인다'는 착각이 수익을 가로막는다 (George & Hwang)

 

마지막으로 주식 하시는 분들이 꼭 알아야 할 2004년 조지와 황의 연구입니다. 이들은 투자자들이 '52주 최고가'를 심리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주가가 신고가를 뚫고 올라가면, 뇌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야, 너무 많이 올랐어. 최고가랑 너무 가까워. 위험해!"

하지만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신고가를 뚫은 주식이 강한 상승 추세(모멘텀)를 타는 경우가 많았죠. 우리는 '고점'이라는 앵커 때문에 "너무 비싸 보인다"라고 착각하고, 스스로 발을 빼며 가장 수익률이 좋은 '슈팅 구간'을 포기해 버립니다.

 

인간공학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건,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험에서는 이 '휴먼 에러'를 막기 위해 시스템을 설계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투자할 때: "내가 얼마에 샀지?"(과거)를 잊고, "이 기업의 미래가 얼마일까?"(미래)를 보는 연습.

공부할 때: "지금 늦은 거 아닐까?"(불안)를 잊고, "오늘 한 문제라도 더 풀자"(행동)를 선택하는 시스템.

 

앵커링 효과의 진짜 문제는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Anchor 재설정 :판단의 기준을 '과거 시세'에서 '미래 가치(일자리, 교통, 학군)'와 '나의 지불 능력'으로 과감히 이동.

화폐 환상 탈출 : 핵심지 아파트 가격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가격을 'New Normal'로 받아들이는 것이 투자의 시작이다.

지수추종 매수 전략의 확장 : 핵심 입지 지수(서울/경기 남부)를 매수한다고 생각하고, 우상향에 베팅한다면 지금이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