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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정유정, 지승호

까비노 2021. 6. 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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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2018년, 작가 정유정이 인터뷰어 지승호가 던진 '작가는 자기 테마를 어떻게 발견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소설가는 조만간 자신을 불태우고 또 다른 창작 세계를 만들어 우리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정유정은 1966년 8월 15일 생이다. 습작기인 1999년 <열한 살 정은이>를 출간한 이후,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출품해 제1회 세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에는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7년의 밤 (2011)>, <28 (2013)>, <종의 기원 (2016)>이 연달아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나도 스티븐 킹처럼 정말 나이 많이 들어서까지 끊임없이 쓰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커. 불안하고, 무서운 것이 그거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할 이야기가 없어질까봐, 나는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별 생각이 다 들어. 그러면 나 자살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들고, 나는 잡초처럼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이라서 힘든 일이 있다고 '나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소설을 못 쓰는 상황이 오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할 이야기가 없어서 '나 이제 소설 그만 써야 할 것 같다'는 상황이 오면 진지하게 나는 죽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인터뷰 중

 

 정유정은 어려서부터 이야기하는 작가가 꿈이었다. 그런데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직으로 9년의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14년 간 식지 않았다. 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았던 거다. 

 

 어느 날 스스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었다. 글쓰기가 좋았을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선망했을까?. 할 이야기가 없어지면 죽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는 이야기꾼 앞에서 전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세상에 할 이야기가 없으면, 세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래도 살아서 밥은 잘 먹더라.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의무는 하나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

 

 진실은 철저한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종의 기원>을 예로 들자면, 주인공 한유진은 사이코패스다. 흔치 않은 정신세계를 재현하려면, 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현장 탐사는 기본이다. 필요하다면,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직접 대화도 해봐야 한다. 여기까지는, 범죄심리학자나 담당 수사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이 되었다. 연구하고 습득했던 사이코패스 정신질환을 2년간 재현했다. 그렇게 진실은 탄생했다.

 

목차 제목  
1부 등단을 향한 여정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2부 이야기와 이야기하는 자 타인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억을 통해서, 몽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3부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법 
소재 영감이 오길 기다리지 마라
개요 소설을 시작하는 여섯 가지 질문
자료조사 아는 게 없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배경설정 소설 속 시공간은 하나의 세계다
형식 이야기에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등장인물 그들에게 고유의 임무와 위치를 부여하라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부 초고-어차피 90프로를 버릴 원고
시작과 결말 초고에서 버리지 않는 부분
이야기의 톤 자신의 직관을 믿어라
플롯 어떤 사건을 절정에 배치할까
주인공의 실패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한다.
5부 1차 수정-그 장면이 필요 없다면 과감히 지워라
서술 그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주제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
초고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쓴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건 영감이라고보다 내 의식 표면에 깔린 이야기에 가깝다. 이는 단기기억에 들어 있었다는 건데 대개 어딘가에서 읽었다든가, 봤다든가, 들었을 공산이 크다.
6부 탈고-이제 원고를 거꾸로 읽어보라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뒤, 글쓰기 솜씨는 여전하다. 제자리다. 아니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내 글이 형편없다는 게 보이니까. '나는 개나 소였구나'. 그럼에도 글을 쓰는 건,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목구멍에서 발버둥 치는 소리를 내뱉으면 그 순간의 욕망은 해소되지만 정작 그 이야기가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적어도 이야기의 집주소는 알고 싶어서 글자로 옮긴다. 매력 없는 글을 쓰는 게 괴롭지만, 허공에 뱉어내는 것보다는 덜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정유정 작가가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고.
문법부터 새로 공부하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절판된 킹의 소설들을 모조리 사 모으고,
읽고, 분석하고,
필사하며 이야기가 무언인지 배워나가 봐.
그 와중에도 공모전에 꾸준히 원고를 보내.
어차피 줄기차고도 시원스럽게 미끄러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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